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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혜 지 Choi, Hye ji

아이가 찰흙을 이용해 꼬물꼬물 빚어낸 것 같은 마티에르와 생생한 색채로 기록된 우리의 <Life, 삶>을 담은 그림이 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물건을 흥정하는 시장의 모습, 가판대에 널려있는 옷가지들…. 작품 앞에 골똘히 서서 어제와 오늘의 내가, 작품의 공간 속 어디쯤 있을지 떠올려 볼 수 있는 회화성과 일상성이 공존하는 그림이다.
보통의 일상성을 갖는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잔잔하게 다가와 마음에 남는 것을 떠올릴지 모른다. 맛으로 표현할 때 싱겁지만 건강한 느낌이라면, 최혜지의 <삶>은 맛깔나게 건강한 느낌이다. 마치 어린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하루의 느낌처럼 모든 것이 새롭고 다채롭게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작가가 삶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의 지속(duree)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생명력(elan vital)은 우리에게 새롭게 창조된 오늘을 선물한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순간은 생명력이 있기에 창조적이다. 특별한 누구도 없이, 생명력을 가진 모든 이들은 창조의 작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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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으로서의 재료, 시멘트로 담아낸 창조적 일상.
Détournement: Creative Life in Cement


나의 작업은 1960년대 사회 예술 운동인 상황주의의 전술을 후기 자본주의를 지내는 현재의 일상에 다시 적용해보려는 시도이다. 소비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나 개인을 능동적 삶의 주체로 회복하기 위해 실천적 예술을 강조했던 상황주의 전술을 나의 작품 <Life> 시리즈로 풀어내고 있다.

그 첫 번째 시도는 자본주의 사회 구조가 소외하고자 하는 이들의 삶을 상품으로부터 전용하기 위하여,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생명'으로 삶의 '창조적 속성'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 방법으로 생명이라는 생태학적 요소를 형이상학적 철학으로 도출해낸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를 이론의 배경으로 삼는다. 생명체가 외적 환경에 단순히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발성을 갖고 창조적으로 진화한다는 이론은 내 작업의 뼈대가 된다. 이것은 생명을 가진 모든 이들의 삶이 창조적 작품이 되는 ‘상황’을 구축하는 것이며, 결론적으로 나의 작품 속 수많은 노동자의 하루를 창조적 일상으로 재맥락화하기 위한 것이다.


두 번째 시도는 상황주의의 전술인 '전용'을 실재적인 작품의 형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작품의 주 재료인 시멘트는 전용의 형식으로 다음의 의미를 갖는다. 시멘트는 물신주의를 대표하는 상징 물질로서 '집'으로부터의 소외를 이끄는 투기 자본의 대표 상품으로 존재한다. 상품으로 존재하는 시멘트의 역할을 기존의 역할로부터 떼어내어 집으로부터 소외당한 자들, 노동의 가치가 하락하는 구조 속에서도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자들의 삶을 기록, 작품화할 수 있는 재료로 전용하는 것이다.

 

세 번째 시도는 상황주의의 또 다른 전술 중 하나인 ‘표류’를 확장된 도시 개념으로 세계화된 현재를 사는 나의 작업에 적용해보는 것이다. 상황주의자들은 주체성을 가진 공동체를 생산하여 인간성 회복을 돕는 방법으로 도시적 사회 공간을 인지하도록 하는 표류의 전술을 제안했다. 이 표류의 전술에 따라 나의 작업은 특정 지역에 일정 기간 머무르며 만나는 이들의 이야기와 장면을 수집한 후 콜라주 하는 방법으로 진행된다. 이야기는 소설이나 시가 되기도 하고, 이미지는 사진과 평면 회화로 구성된다. 매체의 융합으로 콜라주된 작품은 <Life> 시리즈로 묶여 표류의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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