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형 태 Moon, Hyeong tae
문형태 작가는 흙을 바른 바탕에 유화물감을 겹겹이 올려 색을 칠한다. 물감 밑으로 흙이 누렇게 번지는 특유의 색감이 정겹기도, 따뜻하기도 하다.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단순한 선으로 완성한 그의 작품에서 피카소와 바스키아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지만, 지금은 모두 ‘문형태표’ 작품으로 인정한다. 홍대 앞에서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고, 액세서리를 판매하던 그는 2008년 어렵게 연 첫 전시 후 지금껏 개인전만 35회를 치렀고, 그 많은 전시에 내놓은 작품 대부분이 팔렸다. ‘완판 작가’, 문형태 작가에게 붙은 별칭이다.
9년간 35회라는 개인전 횟수도 그렇지만 더 놀라운 건 작업의 양과 속도다. “세어보니 작년엔 완성한 작품이 4백 점이 넘더군요. 매년 3백65점은 더 그렸을 겁니다. 하루에 한 작품 이상은 끝내려고 하니까요.” 흙으로 화면을 바르고 그 위에 물감을 겹쳐 여러 번 덧바르는 작업 방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작업 속도. 비결을 묻자 이렇게 대답한다. “1년 3백65일 하루 스물네 시간 내내 그림만 그리고 생각하니까요. 작가로서 좋은 작업을 한다는 확신을 갖기가 어려웠습니다. 대신 누구보다 작업을 많이 하는 건 제 의지로 해결할 수 있었거든요. 제 능력에 대한 불안을 이기는 방법은 끊임없이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순수하게 붓질하는 시간이 여덟아홉 시간 정도. 나머지는 그림에 들어갈 내용을 구상하는 데 할애한다.
동화적인 문형태 작가의 작품은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 안의 이야기가 밝고 따뜻하지만은 않다. 희망적인 작품에 어두운 요소가 담기고, 더러 있는 잔혹한 작품에도 작가는 사랑을 담는다. “제 작품의 기본 바탕은 사랑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추하게 질투하고 서로 싸우는 과정을 포함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에게 짠한 감정을 느끼곤 하는데, 그이가 바보 같거나 못나보였을 때이지요.” 그는 자신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겹치고 덧붙이기를, 또 나약함ㆍ비겁함ㆍ잔혹함 등 자신 속에 숨어 있는 감정을 발견하고 해소할 수 있기를 바란다.
Flow’, 캔버스에 유채 물감, 45.5×53cm, 2017
12월호 <행복>의 표지작인 ‘산타클로스’에는 흰 수염 나고 풍채 좋은 산타 할아버지 대신 깡마른 소년이 등장한다. 마치 뚜껑이 열린 것 같은 머리엔 작은 소녀가 거꾸로 처박혀 있다. “손톱이 자라는 것은 눈으로 확인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변화하는 것은 그렇게 작은 일들로 느리게 진행되지요. 내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소소한 사건과 생각이 나를 만드는 것 아닐까요? 그것이 마치 산타클로스가 주는 선물 같다는 생각을 했지요.” 이건 문형태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바라보는 시각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는 작업 목표를 “사람들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스트레스를 주는 것”이라 말한다. 그 스트레스는 소년의 머리로 들어가는 작은 소녀처럼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을 테니까.
하루 스물네 시간 그림만 그리고 생각한다는 그에게 “시간과 예산이 무 제한으로 주어진다면 하고 싶은 작업”을 물었더니, 대뜸 “그림을 그리지 않을 것”이라 답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타인을 행복하게 만들 때 비로소 행복해집니다. 제게 그런 시간과 예산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일에 투자할 겁니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이란 집이 없는 사람을 위해 집을 짓는 것. 그를 향해 던지는 질문마다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대답이 되돌아왔다. 끊임없이 샘솟는 아이디어와 풍부한 이야기가 다작의 진짜 비결일 것이다.
문형태 작가는 앞으로 전시와 작업의 수를 서서히 줄여나갈 계획이다. 아직 1년 내내 하루 종일 작업에 몰두하는 생활 방식을 바꿀 생각은 없다. 자신의 작품과 그것을 선택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다. “지금보다 한 작품에 투자하는 시간을 열 배 늘릴 수 있다면 제 그림은 얼마나 좋아질까요?”라고 되묻는 문형태 작가. 각광받는 현재만큼이나 ‘완판 작가’의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글 정규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