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소 연 Kang, So yeon
현대사회는 이전 그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가 되었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라는 경제 체계의 발전은 인간을 도구화시켰고, 우리가 사는 현시대 사회는 점점 더 인간을 무감각하게 만들어 서로를 경쟁하는 관계로 정립하고 있다. 이로 인해 자연스럽게 우리는 갈등과 대립의 반복 속에서 이기주의, 범죄, 인간성 상실과 같은 사회 병리 현상을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서로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고 함부로 타자화하고, 경쟁하는 지금,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 조금이나마 인간성을 매만지고 위로받으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나는 어느 날 길가에 무심히 자라난 풀숲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무심코 지나치던 풀숲 속에서는 서로 뒤엉키고 시들고, 말라가고 또다시 새로운 잎이 자라나고 있는 저들끼리의 치열한 관계를 발견했다. 이 안에서 이뤄지고 있는 생명이 죽고 다시 살아가는 삶과 죽음의 자연스러운 연장선은 거대한 자연계의 축소판이며, 이 마구잡이로 자라난 정글은 공사다망하게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삶과도 다른 바 없었다.
이 보통의 존재들은 쉽게 잊혀진다. 지나가며 보는 풀의 생김새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 사이도 마찬가지로 매초마다 마주치는 우리들은 서로 너무 쉽게 잊혀진다. 나는 이 잊혀지는 존재들을 내 그림 위에 무심하게 그려놓아 기억해 보기로 했다.
작업은 자연을 드로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백토라는 흙 위에 나만의 풀숲을 다시 자연스럽게 그려내고 드로잉을 반복한다. 이 흑백의 자유로운 자연은 작품 속에서 또 다른 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사람이 예부터 시각적으로 보이는 결과물,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써 어딘가에 기록하거나 하는 행위들은 쉽게 잊혀지는 자신을 사라지지 않을 곳, 세상 어딘가에 조금이라도 자신의 흔적을 남겨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자신을 기억해 위로받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하지 않았을까? 세상의 모든 것들은 필연적 이유로 존재하며 모두 가치가 있다는 불경의 말처럼, 나는 작업을 통해 풀을 하나하나 그리는 행위를 반복하며 그 의미를 하나하나 새겨 들여다 봐주고자 한다. 손 닿으면 닿는 모든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아니어도, 당신 지금 그대로도 괜찮다는 보통사람이 보내는 보통사람을 위한 위로의 말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