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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지  희  Kim, Ji hee

욕망과  희망  사이의  변주

 

화려하다, 밝다, 예쁘다, 눈이  부시다, 반짝거린다.

김지희 작가의 작품을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첫 번째 인상이다. 하지만 화려하게 치장된 배경과는 다소 상반된, 작품 속 인물이 착 용한 커다란 선글라스 앞에서 시선이 차단된다. 가려진 눈을 볼 수 없는 탓일까. 첫 번째 인상과 달리 알 수 없는 불편함이 밀려온 다. 계속해서 작품을 들여다보면 화려함의 상징인 각종 보석들과 장신구 사이에서 그와 상반되는 도상들이 발견된다. 이를테면 전 쟁의 이미지 같은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을 상징하는 각종 이미지들이 한 작품에 등장하며 표면적인 작품의 인상과는 다른 이야기 를 전달한다. 화려함 뒤에 숨겨진 불안함이라는 이중적 태도는 김지희 작가의 작품 속에서 늘 한 쌍으로 나타난다.

 

2008년부터 지속해온 김지희 작가의 〈Sealed Smile〉 시리즈는 자신의 속내를 쉽게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 커다란 선글라스 뒤에 숨은 인물들의 초상이라 할 수 있다. 욕망을 상징하는 각종 화려한 도상들 속에서 자신을 감추고 있는 작품 속 인물은 늘 미소를 띠고 있다. 그러나 마냥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때때로 미소와 동시에 눈물을 흘리고 있는 등 왠지 모를 불편함을 야기하는 대 상의 모습은 슬픈 화려함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며 궁금증을 자아낸다.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의 욕망이론처럼 김지희 작가의 작품 속 인물은 자신의 본질, 즉 눈을 가린 채 타인과 동일해지기 위한 수단으로 같은 것을 욕망한다. 화려하게 치장된 커다란 선글라스는 가려진 눈 너머 나를 보는 타인의 욕망과 동일시된다. 따라서 관객은 그 반대 지점에서 대상의 진실된 욕망의 근본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김지희 작가의 〈Sealed Smile〉은 이처럼 타인과 나 사이의 욕망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갖고 있지만 몇 차례 표현 방식에 있어 변화를 보여준다. 초기 작품 속 인물의 소박하고 단순한 형태는 더욱 화려하게 변모되었고, 작품 속 대 상들이 착용한 선글라스 또한 인물의 본질을 감추는 것에서 확장되어 그 자체로 눈이 되었다. 세상을 보는 창이 되 는 눈으로서 선글라스는 외적으로 더욱 세밀하고 화려해졌지만 그와 동시에 어두운 뒤편 너머의 진실 또한 철저히 가려진 채 이중적 경계의 틀을 더욱 견고히 한다.

 

김지희 작가는 도상의 상징성을 적극적으로 화면에 활용하는 작가이다. 아주 사소한 소비에의 욕망을 비롯해 역사 적 측면에서 인류 전체를 향한 욕망이라 할 수 있는 전쟁이미지까지 다양한 상징들을 활용하며 작품 속에 펼쳐낸다. 상징적인 각각의 이미지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것은 작품에 내재된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도상의 활용은 미술사를 부전공한 작가의 이력을 새삼 주목하게 한다. 미술사에서 도상해석학은 도상의 상징적 내용과 표 현 형식의 관계 해석을 통해 작품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방법론이다. 작품에 나타난 도상들을 바탕으로 해당 시대 의 보편적 특성들을 찾아내는데, 김지희 작가의 작품은 현대 사회의 보편적 욕망을 도상을 통해 드러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작가는 작품 주변부에서부터 조금씩 표현해왔던 동물 도상을 2020년 신작에서는 아예 작품의 전면에 등장시 켰다. 호랑이와 부엉이가 바로 그것인데, 이 동물들의 상징은 길함이다. 특히 캔버스 120호 크기의 대형 작품 속 주 인공으로 등장한 백호는 지금까지 눈을 가리고 있었던 인물들과 달리 형형한 눈빛으로 마주한 사람을 응시하며 희 망을 부추긴다.

 

도시 사회의 욕망 혹은 소유의 욕망을 담고 있는 화려한 이미지에 등장한 소원성취용 부적 같은 동물 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희망 혹은 운을 상징하는 도상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바람, 즉 욕망을 의미한다. 욕망은 일종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으로 채 워지지 않은 그 무엇에 대한 갈망이다. 또한 결코 충족될 수 없는 그 무엇이다. 반면 희망은 누구나 가져야 할 목표 같은 긍정 적 대상이며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누군가의 희망과 욕망이 절대적 차이를 가진다고 확언할 수 있을까. 욕망과 희망 사이 에는 과연 무엇이 존재하며, 그 경계는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을까.

 

욕망과 희망은 무엇인가를 바란다는 점에서 동일한 선상에 놓여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욕망이 있고 희망이 있다. 그리고 그것 은 때로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 간절한 기도와 희망을 담은 종교화(畵)처럼 욕망을 상징하는 각종 도상들을 품은 작품 은 그 자체로 희망을 기원하는 현대식 ‘이콘(icon)’으로 자리 잡은 듯하다. 백호와 흰 부엉이 도상 사이에 기존의 표현 방식에 따른 인물 도상까지, 개별적이면서도 동시에 삼면화로 연결되어 활용되는 캔버스의 형식적 특징도 이와 같은 맥락일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상서로운 동물과 기도하는 손 등의 이미지는 욕망과 희망 사이에서 인간의 존재와 삶을 추동하는 목적에 대해 다시 한 번 질문하게 한다. 김지희 작가가 한 겹 한 겹 쌓아올린 안료처럼 욕망과 희망 사이에 켜켜이 쌓인 시간들은 작가 자신의 희망과 가능성을 증명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과정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김유진  |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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